[특파원통신]싱가포르 총리의 국경절 3개국어 연설

말레이어·중국어·영어順
독립기념일마다 통합 강조…세계 2위 국가경쟁력 원천
촛불·태극기 양분된 한국…새 대통령, 국민 힘 모아야

싱가포르 독립기념일(8월 9일)을 맞아 진행되는 총리의 국경절 연설은 국민에 대한 국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. 이 연설은 특이하게 3개 국어로 진행된다. 말레이어로 시작해 본론은 중국어, 마무리는 영어로 하는 형태를 취한다. 중국계(74%), 말레이계(13%), 인도계(9%)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싱가포르의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. 이러한 통합 비전은 1965년 독립 당시 가난한 어촌 마을이었던 싱가포르가 반세기 만에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가 넘는 부국으로 도약하게 된 핵심 비결이다.

이 틀은 ‘싱가포르의 국부(國父)’로 불리는 고(故)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 때 마련됐다.

그는 서울시만 한 면적,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도시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선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. 안으로는 강력한 법치로 통합을 지향하면서 밖으로는 개방경제,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싱가포르를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로 만드는 데 기틀을 닦았다. 그는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로 재직하면서 ‘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’며 태형(笞刑)을 도입하고, 담배꽁초 투기 등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해 ‘독재자’라는 비판도 받았다. 하지만 이러한 역사로 세워진 싱가포르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갖춘 부국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. 인구 560만명의 싱가포르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(WEF)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스위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.

리콴유가 만들어놓은 이러한 전통은 그의 아들인 리셴룽 총리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.

프리미엄 첨부 이미지 지난해 8월 리 총리의 국경절 연설에서도 통합 메시지는 빠지지 않았다. 그는 테러 위협 등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을 합쳐야 한다고 지적하며 “다민족 사회 가치를 유지하면서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”고 강조했다. 특히 지난해 연설은 지구촌 화제가 됐다. 리 총리가 현기증 증세를 보여 연설이 잠시 중단됐기 때문이다. 리 총리는 말레이어와 중국어로 열정적인 발언을 쏟아낸 이후 마지막 순서로 영어 연설을 하던 중에 비틀거렸다. 리 총리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연단에서 내려왔고, 잠시 휴식을 취한 이후 행사장에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연설을 마쳐 박수갈채를 받았다.

다음달 9일이면 한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. 그가 누가 됐든 ‘촛불’과 ‘태극기’가 상징하듯 극심하게 분열된 국론을 통합시켜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. 새 대통령이 취임사를 준비할 때 싱가포르 총리 연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. 3개 국어로 연설하라는 게 아니라 ‘국민 100%’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 메시지가 간절하다는 것이다. 우리는 같은 말을 쓰지만 세대·계층 간 소통이 잘 안 되는 상태에 이르지 않았는가.

[장용승 아시아순회특파원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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